안녕하세요 에듀몬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프뢰벨의 낭만주의 교육철학에 근거한 그의 유아에 대한 교육철학을 살펴보았는데요. 프뢰벨은 유아기의 인간교육 방법으로 상징과 예감, 놀이와 자기 활동의 원리, 노작의 원리, 발달 순응적 교육과 명령적 교육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번 시간에는 '상징과 예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상징과 예감
‘상징(symbol)’이란 용어는 원래 ‘짜 맞추다(to put together)’와 ‘비교해보다(compare)’의 뜻을 지닌 희랍어 동사 ‘symballein’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상징은 가시의 세계, 곧 물질의 세계가 연상의 힘에 의하여 비가시적인 세계, 곧 정신세계와 일치하게 되는 표현의 양식입니다. 따라서 어떤 상징물은 외형으로 봐서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의도적인 해석 작업이나 추출을 필요로 합니다. 이에 보는 이로 하여금 활발한 정신적 활동을 하도록 자극합니다.
프뢰벨의 교육사상에서 나타나는 ‘상징’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emblema’에서 유래된 것으로, 외국어 ‘symbol’이라는 용어가 독일어 ‘Sinbild(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얀(Jarn Friedrich Ludwig, 1778~1852), 아른트, 크라우제(Krause Karl Christian Friedrich, 1781~1832), 피히테 등 낭만주의자들에 의해서였습니다. 프뢰벨은 상징을 유아가 모든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생각하였으며, 정신적인 현상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상징을 해석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생의 초기의 어린이에게 발생하는 모든 현상은 상징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상징을 통하여 생명의 요구와 법칙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에서 초감각적인 것을 알게 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상징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은 프뢰벨의 유아교육원리와 놀이 이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뢰벨의 상징은 낭만주의의 일반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프뢰벨의 상징에 대한 이해는 노발리스로부터 시작하여 쉘링을 통해 그 철학적 기초를 찾아내고 역사적으로 전승된 신화적인 상징내용의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프뢰벨은 우리가 보는 자연의 많은 대상물들은 그 속에 생명의 근원 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상의 상징을 구체적으로 직관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상징은 구체적인 사물을 뛰어넘는 정신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물(Gegenbild)과 상징적 의미 사이의 관계는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물과 상징적 의미 사이의 관계는 여러 종류가 존재합니다.
Bollnow(1977)는 프뢰벨의 상징개념은 역사적 전승에 의한 심벌(Sinnbild)과 신화를 취급하는 후기 낭만주의에서 보다 전기 낭만주의의 자연 상징론에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상징은 프뢰벨의 『인간교육』에서 통일적, 전체적 신성의 발현이라는 사상의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상징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상황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깊은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특히 자기의 마음 세계를 외적 상징으로 표현하고 그것과 마주 대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인식을 도모한다는 프뢰벨의 주장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프뢰벨은 감각적인 대상과 배경에 있는 정신적인 내용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정신적인 것은 감각적인 것 속에 거울과 같이 비추고 있어 직관하게 된다는 낭만주의적 자연적인 상징에 주목하였습니다.
프뢰벨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연적인 상징’에 주목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교육』의 형이상학적인 기본개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프뢰벨에게 있어 자연 자체와 모든 현실세계는 가장 깊은 곳에 이를 때까지 상징적인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모든 외계는 신비적인 상태로까지 높여진 내계이며, 감추어진 정신적 본질의 심오한 표현이라는 노발리스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프뢰벨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상징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인간이 자연과 접하면서 그 안에 상징되고 있는 인간에 있어서의 이상을 이해하고 인식해 가야 할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즉, 감성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감성적이고 정신적인 하나의 세계로 발달해가는 것이며, 결국 인간이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자신의 천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연과 삶 안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그의 삶, 그의 천직, 그의 사명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프뢰벨은 자연현상, 인간의 정신과 감정, 삶 속에서 생기는 모든 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였으며, 이 상징적인 것을 다시 삶에 도입하는 것을 통해서 삶은 참다운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의 상징 개념은 사상적 개념으로서 삶의 철학의 기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프뢰벨이 표현한 상징은 외부적 자연현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소산물과 같은 객관적인 문화세계에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외부로부터 내부가 인식되는 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징을 부인하면 외적인 현상밖에 볼 수 없습니다. 프뢰벨의 이러한 상징에 대한 생각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프뢰벨은 이처럼 자연과 우리 인간의 삶의 모든 것들을 상징으로 보고자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자연현상, 정신, 감정, 삶에서 생기는 모든 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명시하였고, 이 상징적인 것을 다시 삶에 도입하는 것에 의해서 삶은 참다운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습니다.
유아에게 주어진 놀잇감은 놀이의 대상물인 동시에 보다 깊은 정신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유아가 놀잇감을 가지고 놀이를 함으로써 자신의 심적 기능을 형성하고 세계상을 형성하는 것이 프뢰벨이 제시한 놀잇감이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놀잇감의 특성을 유아가 이렇게 깊은 의미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성급한 발달을 피해야 한다는 낭만주의의 기본 명제에 현저히 위반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유아가 파악하고 형성한다는 말은 실제로는 예감(Ahnung)을 의미합니다. 유아는 단지 ‘잠자고 있는 자기 이해와 자기 지각’을 가지고 ‘자기 내외의 의식적 생명의 몽롱한 예감’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를 통한 어떤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희미하게’ 받아들여질 뿐입니다. 프뢰벨은 이 ‘예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유아는 오성적으로 세계를 판단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감정적인 ‘예감’을 통하여 풍부한 생명 이해와 세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형식으로 유아 안에 준비되어 있어 후에 명석한 개념으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예감’의 형식을 거친 후에 명석한 의식으로 전이되는 것입니다. 유아의 ‘예감’은 감정적인 색채가 짙으면서 경험과 연관된 것이기는 하나, 인식에 관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교육’, 즉 프뢰벨의 범주적 교육의 최종점은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입니다. 유아에게 주어진 ‘놀이 선물’과 ‘작업’이 이를 수행합니다. 상징이 상징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보다 깊은 예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예감의 형식을 거쳐서 정신적인 내용들이 받아들여지는 형식이 바로 상징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즉, 정신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각 가능한 형식으로 직관하는 것입니다.
프뢰벨의 상징과 예감의 개념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1820년대 중엽부터 1830년대 초에 걸친 상징의 개념은 프뢰벨에 의해서 그 개념이 명확해졌습니다. 프뢰벨의 놀이이론의 발전시기에 어린이의 자기력과 자기 활동력을 환기한다는 유희 제1의 측면에서 제2의 측면인 놀이의 상징적인 의미가 등장되었다는 과정을 진술하고, 이 놀이의 상징적 의미는 그의 소논문 「썰매 타기와 스케이트 활주」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썰매타기와 스케이트 활주」에서 인간의 어떤 본질적인 의미가 상징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경사면을 썰매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놀이는 다시 활주 하기 위해서 그 출발점을 이루는 높은 장소까지 고생해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뢰벨에 따르면, 평평한 눈이나 얼음 위를 빠르게 활주 하는 것이 인간이 목표를 향해서 방황하는 일 없이 노력한다는 행위 일반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목표를 주시하고 직선적으로 그것을 추구해나가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얼음 위에서 직선 방향으로 활동함으로써 그 운동이 당장은 불투명하지만 어떤 보편적인 인생의 심오한 본질적 특징을 추구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프뢰벨은 유아의 마음에 이처럼 생생하고 명료하게 존재하고 있는 목표를 향하여 신속히 자유롭게 돌진하는 한 줄기의 길보다 더 인간 존재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인간의 사명을 요청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하였으며, 놀이에서 경험하는 것은 인생의 목표를 추구한다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이처럼 놀이를 통해 단순히 신체적 능력의 발달이나 심적 기능의 전개뿐만 아니라, 인간은 놀이를 통해 자신을 세계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경험으로 이끌어 간다고 보았습니다.
상징은 최초에 입방체의 부분을 잘라낸 것 중 한 조각을 일컬었습니다. 놀이선물은 완전한 추상적 사고로 나아가지 못한 아동에게 사물과도 닮아 있고 언어와도 닮아 있는 중간적 형태로 제시되는, 일종의 상징물입니다. 프뢰벨에게 있어서의 상징물(Zeichen)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컨대 ‘선’은 개천, 철도, 길 등을 추상해 내는 상징적 도구입니다. 선으로 추상된 개천, 철도, 길 등을 실제로 우리 눈에 보이는 개천, 철도, 길 등이 가지는 감각적 요소가 상당한 정도로 배제됩니다.
선과 선 사이의 관계를 지각하고 표현하는 것은 아이에게 감각적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다양한 방향에서 열어줍니다. ‘수’와 ‘형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사물과 결합되어 의미를 가지던 ‘수’와 ‘형태’는 점차 사물에서 벗어나서 그 자체의 다양한 조합과 배열에 의존하여 규칙성과 관계성을 표현하게 됩니다.
프뢰벨은 유아가 선과 수와 형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놀이선물을 가지고 놀이를 함으로써 희미하게나마 ‘신성한 통일’에 관한 지식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예컨대, 제1놀이 선물인 공(색 털실로 짠 공)을 가지고 놀 때에 유아는 단일성과 그것의 표현으로서의 다양성을 감지할 수 있고, 제2놀이 선물인 공(나무로 만든 공), 정육면체, 원통을 가지고 놀 경우에 유아는 개별자의 운동 방향과 크기와 수로 나타나는 다양성을 인식하고 그것의 토대가 되는 단일성을 모방하게 되며, 대립과 통일의 원리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정육면체 8개로 구성된 제3 놀이 선물을 가지고 놀이를 할 때에, 유아는 8개의 정육면체가 다양한 형태의 조합과 배열을 통하여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통일된 전체의 변형에서 생긴다는 점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아는 다양한 배열을 통하여 사물의 형식, 수의 형식, 미의 형식을 감지하게 됩니다. 결국 유아가 놀이 선물을 가지고 놀이를 함으로써 인식하게 되는 단일성, 개별성 그리고 다양성은 다름 아닌 ‘신성한 통일’이 자신을 드러내는 양상을 세 가지 관점에서 규정한 것입니다. 이 점은 어느 놀이 선물의 경우 모두 해당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놀이 선물은 신이 아이에게 내려준 선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처럼 놀이 선물은 신이 자신의 존재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징물입니다.
프뢰벨은 『어머니의 노래와 사랑의 노래(Mutter-und Koselieder, 1844)』에서 세계를 실제와 상징이라는 이원적 상징을 사용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유아에게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서 실제 사물에 대한 이야기만을 한다면, 유아는 실제로 숨어있는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프뢰벨은 유아가 추상적인 실제에 대한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것입니다. 프뢰벨은 『Mutter-und Koselieder』에서는 실제와 상징을 언어로 표현하고 예술적인 그림과 함께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용도 소박하고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하였습니다.
프뢰벨의 세계관의 본질은 현상세계 전체가 상징적이며, 원칙적으로는 개개의 부분도 모두 전체를 반영하기 때문에 전체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다른 중요한 상징 영역은 식물이었습니다. 단순한 법칙성에 따라 발달하는 식물의 성장은 ‘인간 식물’의 발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Kindergarten이라는 명칭 또한 깊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유아는 정원사의 보호 아래 성장하는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식물이 건강하게 성장하듯이 인생 초기에 있어서 많은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내재한 유아는 자연과 신과 조화를 이루면서 경험이 풍부한 정원사인 교육자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치원은 교사, 유아, 학부모가 함께 실현해 가는 교육과정의 진실한 상징으로 우리에게 보입니다.
프뢰벨은 유아가 상징을 이해하는 것은 예감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예감은 활동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유아는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특성을 나타냅니다. 활동을 하는 유아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창조주가 됩니다. 이때 활동은 창조적 활동으로 자신의 창조력을 강화시키고 그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유아가 스스로 하는 활동은 특히 예감을 갖는 것과 밀접합니다. 그러므로 교육은 유아의 본성에 따라서 유아들의 인식과 감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프뢰벨은 상징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이상을,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연결을, 외적 지향과 외부 과정과의 통일을, 그리고 국민과 인류라고 하는 보편적 인간성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상징은 유아의 내적인 힘에 대한 신뢰이 며, 교육의 목적을 외부가 아닌 자기 활동의 원리에 따라 유아 스스로 신성의 실 현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유아교육이 지나치게 개념 지식 위주로 흘러가고, 스마트 매체 등의 교육도구를 사용한 혁신적인 것,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음을 고려할 때, 프뢰벨의 상징은 유아의 인식능력에 대한 존중이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유아교육자와 부모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 참고문헌: 낭만주의 교육철학에 기초한 프뢰벨의 유아기 인간교육(염정은, 2018)
'교육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뢰벨의 교육이론 ④ (교육방법: 노작 ) (0) | 2020.09.14 |
---|---|
프뢰벨의 교육이론 ③ (교육방법: 놀이와 자기 활동) (0) | 2020.09.13 |
프뢰벨의 교육이론 ① (유아기에 대한 인간관) (0) | 2020.09.11 |
루소와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 비교 (0) | 2020.09.10 |
루소의 교육사상(성선설, 자연주의 교육) (0) | 2020.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