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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론

프뢰벨의 교육이론 ① (유아기에 대한 인간관)

by 신박에듀 2020.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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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듀몬입니다. 우리는 흔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이름, 유아 교구명 등으로 '몬테소리'가 들어간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프뢰벨은 유치원 및 유아교육의 아버지로 저명한데요. 그는 독일 낭만주의 교육철학과 사상가들을 토대로 확립된 낭만주의적 교육철학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의 교육사상 및 교육방법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프뢰벨의 유아기의 이해

 

 1) 영아기

 

  영아기는 인간발달의 최초 단계입니다. 프뢰벨은 그의 독자적인 언어 상징론을 사용하여 영아의 본질을 해석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아를 ‘젖먹이’라고 합니다. 프뢰벨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영아를 ‘무엇이든지 삼키려고 하는, 이해하 려고 하는 시기의 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倉岡正雄(1982)은 영아에 대한 프뢰벨의 해석이 매우 적절하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삼키는 것, 이해하는 것’은 이 시기 영아의 유일한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의 인간은 외계의 다양성을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아는 어머니의 모유를 삼킬 뿐만 아니라, 온몸의 감각이 눈과 같은 작용을 하며, 주위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프뢰벨은 독일어의 ‘빨다’라는 의미인 ‘saugen’을 ‘s-augen’으로 분석하여, ‘auge(눈)’이라는 의미를 추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아를 외부의 것을 이해하는 도구인 ‘눈’과 결부시켰습니다. 이는 프뢰벨 특유의 언어 해석이며, ‘눈으로 외부의 것을 빨아들이는 유아’를 상징화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프뢰벨은 영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을 ‘최초의 미소’라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영아의 미소 속에 이미 그 발달의 가장 빠른 단계에서 인간의 품위와 본질을 특징짓는 인간 존재의 고귀한 표현이 담겨 있다고 보았습니다. 미소는 단순히 ‘신체적 건강과 육체적 쾌락의 표현’만은 아닙니다. 동물에게도 이와 같은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물은 결코 미소를 짓지 않죠. 미소는 인간의 고유한 것이며, 이미 처 음부터 독자적인 정신을 내포합니다. 영아에게 ‘미소’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수단입니다. 프뢰벨은 영아의 미소가 바로 ‘처음 싹트는 자의식의 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아의 첫 번째 발성은 인간의 삶에 처음 나타나는 첫 번째 발성이며, 안정과 불안정, 기쁨과 슬픔, 미소와 눈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프뢰벨이 인식한 영아는 온 몸의 감각기관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존재입니다. 프뢰벨은 영아의 ‘공동감정의 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어른들은 영아의 웃는 것과 우는 것에서 구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안정, 쾌감, 미소’의 세 가지는 영아의 본질로서 인간의 본성이 방해되지 않고, 순수하게 발달하고 있다는 것을 영아가 느끼고 있는 표시입니다. 이와 반대로, ‘불안, 고통, 침울’이 나타난다면 이는 영아의 인간적 본성의 발달이 방해받고 있는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아기에는 무언의 교육으로서 환경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영아의 공동감정을 길러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자신에게 부재하였던 ‘어머니의 사랑’의 중요성을 여러 저서를 통해 강조하였습니다. 프뢰벨은 가정은 유아에게 있어 최초의 학교이며, 어머니는 '교육자'라 하였습니다. 또한 유아교육의 개혁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인간교육』에서 부모가 아기의 출생을 전후하여해야 하는 것, 부모의 역할, 부모의 태도 등을 자세히 기술하였습니다. 또한, 1839년∼1852년에 걸쳐 「블랑켄부르크의 여성들과 어머니에게 보내는 10통의 편지」를 통해 자신의 킨더가르텐의 정신과 유아의 본질, 유아교육에 있어서 어머니와 가정의 역할 등을 피력하였습니다.

 

 2) 유아기

 

  유아기의 초기 단계는 영아기와 구별하기 어렵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것만으로 여러 가지 점에서 구별할 수도 있겠습니다. 프뢰벨은 그 근본적인 특징으로서 유아의 내적인 통일력, 즉 언어의 표현을 통해 구별하였습니다. 영아기의 인간은 통일보다는 분화가 일어나지 않은 시기이며, 공동감정에 의한 세계에 지배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 해 유아기는 내면적으로 분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것을 내면적으로 통일하려고 하는 시기입니다. 이 점에 대해 프뢰벨은 감상이나 신체, 사지의 활동성의 발달과 같이 유아는 자발적으로 내면적인 것을 외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영아와 유아의 경계를 언어형성의 시작으로 규정하였습니다. 프뢰벨에 있어서 유아기는 인간의 언어능력이 발달하며, 자신과 세계를 분리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유아는 언어를 통해 주변 세계 속의 어떤 확실한 대상을 단어로 파악하게 되며, 이들 대상을 인간과 대치되는 다른 것 혹은 외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프뢰벨은 독일어의 ‘유아(Kind)’라는 말을 ‘알린다(kundtun)’와 ‘고지시킨다(verkundigen)’와 같은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프뢰벨의 이와 같은 상징적인 해석은 그의 교육사상의 도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아가 내적인 것을 외적으로, 또는 외적인 것을 통하여 표상하려 하고,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의 간극을 통합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참다운 교육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유아의 신체를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을 돌보는 교육 또한 중요합니다. 프뢰벨은 이와 같이 유아의 ‘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을 중시하였습니다.

  유아기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많은 교육학자들이 강조해 왔습니다. 결정적 시기(Lorenz, 1953; Hess, 1959), 민감기(Montessori, 1966), 애착(Ainsworth, 1979) 등 의 교육학 용어는 유아기 교육의 중요성과 적기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프뢰벨은 인간의 발달은 연속적인 것으로, 각 단계의 순위를 정할 수는 없으나 유아기는 내적 본질을 파악하는 최초의 출발점이므로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유아가 세상과 사물을 올바른 관계로 인식하는지, 혹은 왜곡된 관계로 인식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단계의 유아는 모든 사물을 정확하게 직관하고 순수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부모와 유아교육자와 같은 어른들은 유아를 둘러싼 모든 것을 명료하고 순수하게 직관하고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올바르게 직관하고 인식한 후에 유아에게 정확하게 제시해야만 유아들은 그것을 보고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가 지 측면은 불가분의 것으로, 상호의존적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뢰벨은 유아교사의 중요성을 피력하였고, 이로 인해 유아교사 양성을 체계화하는데 공헌하였습니다.

  프뢰벨은 그의 생애에서 걸쳐서 그 자신이 먼저 위대한 교사였으며, 교사 양성에 대한 그의 큰 관심은 유치원 계획 중의 큰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유아교사는 항상 자신을 성찰하고, 유아에게 이끌려야 하며, 다른 이들은 거의 파악할 수 없는 유아 안에 깃든 본질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것들은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른다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유아교육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었으며, 교사들은 외부 세계를 내부에, 내적 세계를 외부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 프뢰벨의 유아기 인간관

 

 1) 신성이 깃든 유아

 

  프뢰벨은 유아가 태어날 때부터 신에게 받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 가능성을 ‘신성’이라고 하였고, 이를 인간의 본질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신과 같은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에는 신과 같은 창조의 힘과 표현력이 내재되어 인간의 본질인 ‘신성’이 발휘되도록 하는 것이 곧 ‘교육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신적 정신’인 ‘신성’은 프뢰벨이 교육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프뢰벨은 신이야말로 이 우주의 제일의 교육자이며 또한 신을 아는 것이야 말로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신을 위하여 인간은 신이 창조하신 자연과 친숙하여, 자연에 나타나 있는 영원한 진리와 법칙을 감지하였을 때 비로소 신에 접근하며 신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뢰벨은 인간은 신의 성품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기 결정력에 의해 신성을 알고 느낄 수 있어서, 자기의 선택과 결정에 의하여 자신의 본성을 나타내고 발달시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유아를 이처럼 신성을 소유한 존재로 파악하였습니다. 프뢰벨에게 있어서 신은 창조주이며, 신성의 본질은 활동이며 창조입니다. 이러한 신성을 자신의 본성으로 하고 있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창조적인 활동을 지향하게 됩니다. 신성은 유아로 하여금 끊임없이 활동하게 합니다. 신성이 바로 유아의 내면적인 것을 창조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생명활동의 근본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페스탈로치는 유아를 신의 경지에 도달시키기 위한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한 반면 프뢰벨은 유아를 신과 동등한 입장의 관점으로 취합니다. 모든 신의 원천이 놀이에 있듯이 유아들의 놀이도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과 동 일하게 유아들의 놀이도 그들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프뢰벨은 신, 인간, 자연의 합일이 유아에게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유아는 신의 축복을 받은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프뢰벨에게 있어서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그의 정신세계에서 인간상과 자연 원리에 합당한 주체 또한 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아와 신의 관계는 경건함에서 형성되는 삶 자체이며, 창조주로서 신은 정원의 교육자이며 빛과 영양을 공급하며 생명력을 일깨우는 절대적인 권력자였습니다. 신은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만물은 그 근원인 신성에 의해서 발달하고 발전합니다. 모든 것의 통일체로서의 신으로부터 자연과 인간은 일치됩니다. 프뢰벨은 인간은 신에 의하여 모든 현상의 최초의 시발점임과 동시에 궁극의 관계점인 신의 품속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프뢰벨에게 있어 교육은 유아에게 내재된 신적인 것, 창조적 활동 혹은 작업 충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의식하도록 유아를 자극하고 이끌어 주는 것이며, 신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뢰벨이 인식한 유아는 신의 성품을 내재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프뢰벨은 유아가 삶을 영위하는 양상을 두 수준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현실의 차원으로,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신체가 성장하는 등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상징의 영역으로, 이것은 내적 충동과 소망의 표현입니다. 놀이선물과 같이 유아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에는 내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프뢰벨에 따르면 우주에 있는 어느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신성을 내재한 유아와 같이 만물에는 신성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프뢰벨 교육원리를 이루는 ‘만유 재신론’으로 설명되며, 유아에게 내재한 신성을 발현해야 하다는 프뢰벨의 교육목적과 상응합니다.

 

 2) 완전한 인격체로서의 유아

 

  프뢰벨은 유아를 완전한 인격체로서, 선한 본성을 내재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또한 유아를 관계성의 관점에서 설명하였습니다. 프뢰벨에게 유아는 신, 자연, 인류 모두와 관련을 맺은 존재입니다. 유아는 과거와 현재, 미래뿐만 아니라 자신 안에서 통일성 (신), 다양성(자연), 개별성(인류)을 충분히 이해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프뢰벨은 이처럼 유아를 선한 본성을 가진 존재이며, 선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 완전한 인격체로 보았습니다. 프뢰벨 이전의 교육사상가들이 유아를 성인의 종속물, 성인의 지시나 통제에 의해 완성되어질 수밖에 없는 미완성의 존재로 보았습니다. 중세에는 인간을 타율적인 존재로 인식하였으며, 사실을 배제한 추상적 교육, 어린이 세계를 무시한 맹목적 교육, 일방적 관계만을 강요하는 권위주의 교육,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는 형식적인 교육 등이 횡행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을 개성을 지닌 존재로 보았습니다. 각 개체 는 허상이며, 어떠한 개체도 전체와 통일되어서만 그 실상을 회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체로서의 통일만이 실상이며, 그 통일자(신)의 자기실현 과정인 신성에 관계되는 한에서만 허상은 실존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프뢰벨은 인간에게 내재된 신성을 인간의 본질로 보았으며, 유아기의 인간을 선한 본성을 내재한 존재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루소의 ‘아동 존중 사상’과 이어지는 흐름이며, 유아를 성인의 축소판이나 불완전한 존재로 보았던 전통적 교육사상과는 전혀 다른 견해입니다. 프뢰벨에게 유아는 신, 인간, 자연과 관계하여 존재하는 완전한 인격체이자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3) 끊임없이 발전하는 존재로서의 유아

 

  프뢰벨은 유아를 끊임없이 발전하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프뢰벨은 인간은 인류의 일원이자 신의 아들로서 그 누구에게나 인간성이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유아에게는 끊임없이 발전하고자 하는 성질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인간성은 아주 독특한 개인적인 방법으로 각자 속에서 표현되고 각인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성과 신의 본질이 그 무한성과 영원성에 있어서 자기 속에 포함된 모든 다양함을 예감하기 위해서는 인간성이 각자의 개인 속에서 독특하고도 유일한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프뢰벨 이전의 교육학자들의 유아에 대한 인식은 ‘오랫동안 어른들에 의해 돌보아져야 하기 때문에 무기력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프뢰벨은 이 불완전성이 바로 인간의 품위이자 본질이며, 그곳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자력으로 향상되도록 운명 지어지고, 끊임없이 높은 자각에 도달해야 할 사명을 가진 인간의 본질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즉, 프뢰벨은 유아를 끊임없이 발전하는 존재로 본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환경적인 장애물을 모두 본능으로 극복하므로 자기의 힘, 인식력, 주위의 다양성과 통일관계 등에 대한 반성이나 자각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동물들은 만물의 비교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비교점에 대하여 프뢰벨은 피히테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며, 인간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활동에 의한 장애물 극복과정으로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생아의 무력함, 의존심은 자기의 힘, 행동력의 고양 속에 생겨 나오는 자조능력과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 대응이 바로 인간의 가능성을 눈뜨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유아는 완전히 계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정되어 있거나 정체되어 있는 것도 아닌 끊임없이 진보하고 성장하는 영원한 동적인 발달의 상태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프뢰벨의 인간발달의 법칙이 시작되며, 인간의 이성과 의지, 감성적인 면이 성장과 발달을 통해서 실현됩니다.

  프뢰벨은 유아 교육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제1장 인간 생명의 출생」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딱딱한 옥수수 씨가 썩어서 그 안에서 싹이 나와 생명이 나오는 것, 한창 핀 꽃들이 여러 개로 떨어져 열매가 영양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물질적인 자연이나 인간 삶 가운데서 먼저 있던 생명이 쇠퇴하거나 파괴됨으로써 새 생명이 존재하게 되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문제는 항상 함께 나타나며, 변하는 것과 영원한 것, 현상적인 것 과 절대적인 것,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모두 섞여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프뢰벨의 유아기의 인간 이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아기는 인간 발달의 최고 단계이며, 프뢰벨은 영아기의 ‘최초의 미소’와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프뢰벨은 유아기는 내면적인 분화와 통일이 시작되는 시기로, 내적 본질을 파악하는 출발점으로서 지극히 중요한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프뢰벨은 유아를 신성이 깃든 존재, 완전한 인격체로서의 존재, 끊임없이 발전하는 존재로 인식하였습니다.

 

 

※ 참고문헌: 낭만주의 교육철학에 기초한 프뢰벨의 유아기 인간교육(염정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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