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듀몬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관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관, 정치적 공공성, 자아실현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교육 목적과 교육내용, 교육방법을 바탕으로 그의 교육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육목적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의 탐구 주제는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첫째, 모든 인간의 활동은 선에 목적을 두고 어떤 선은 그 밖의 선에 예속한다.
둘째, 인간에 있어서 선의 과학은 정치학이다.
그러므로 그에 있어서 교육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선에 따른 활동으로서 행복이 인간의 목적으로서 수용되고 최고의 선이 지성의 삶에서 발견되는 것이라면 선과 지력의 발달이라는 교육 목적의 두 가지는 암시적으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이론은 인간학적 존재론의 기반 위에 서 있습니다. 그는 객관적 이념으로서의 선(善)으로부터 교육을 이끌어내지 않고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명체로써의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궁극적 목적으로부터 교육을 파악하였습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성취이자 작품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신능력에 의해 자연적 본능을 선과 공동체 그리고 알려고 하는 인식의 의지로 고양시키는 존재로서 이러한 자기 형성의 과정에 교육이 함께 합니다. 즉, 교육은 타고난 소질과 성향의 점진적 발현에 맞추어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계층적 질서에 따라 제시된 목적들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교육이 추구하는 목적은 신체, 영혼, 정신적 전체성이라는 인간의 존재 구조에 따라 정해집니다. 먼저 교육은 자연적 질서에 합당하게 신체의 단련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다음 단계의 교육은 몰이성적이고 무질서한 본능적 충동이 이성의 객관적 요청과 마주치게 되는 영혼의 중간지점에 위치합니다. 즉, 교육의 중심 과제가 도덕교육에 위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덕교육에서는 무엇보다도 인격 전체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개별적 요구들뿐만 아니라 전인적 방향 결정, 행동양식의 형성 그리고 행위능력과 더불어 사회질서 속으로의 편입이 관건이 됩니다. 즉, 개별적 인간의 자아실현 과정으로서의 신체발달과 도덕적 탁월성의 실현을 통한 사회성의 발현이 교육의 첫 번째 과제입니다. 여기서 나타난 교육의 목적은 개별적 인간을 훌륭한 시민으로 양성함으로써 국가에서의 바람직한 공공적 삶을 가능케 한다는 실질적인 측면에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행복이란, 영혼이 그 고유한 덕(aretē)의 형식에 상응하게 행위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비록 인간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욕구를 지닌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탁월성을 사회적 관계를 통해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인간 개개인이나 국가의 행복을 위해서 시민으로서 자신의 실제적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 적합한 인간을 길러내야만 합니다. 인간이 욕구를 억제하고 절제와 용기 그리고 관용을 갖춘 정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으로서 사회적 삶을 사는 데에는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는 욕구가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육의 두 번째 과제는 개별적 인간 영혼의 질서나 인간이 함께 살기 위한 조건에 대한 염려가 아닌 정신의 요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명은 인간이 내재된 최고의 존재 능력인 관조하는 인식을 활성화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관조하는 인식은 현실을 초월하면서 인간을 신적인 것과 연결시키고 또 완전한 삶이 목표하는 바를 성취하게 합니다.
즉, 교육의 두 번째 과제에서 볼 때, 비록 유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목적 혹은 최상의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성의 능력은 단순히 욕구의 억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신적인 경지로 고양시킨다는 그 자체의 순수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수행합니다. 모든 생명체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자기 자신의 개별적인 선보다 더 높은 선을 직관할 수 있는데, 바로 그러한 행위를 통해 인간은 실제적 삶에서 초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육은 인간이 자신의 사변적 능력을 통해 신적인 경지에 도달하여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궁극적 목적을 지녀야 합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 철학적 교육이론에 나타난 교육의 목적 이란 인간 영혼의 신체적 부분과 욕구적 부분의 활동이 합리적인 동시에 정신적 부분의 활성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파악될 수 있습니다. 영혼의 비이성적 부분으로 신체와 욕구는 영혼의 이성적 부분인 관조하는 인식에 기여할 때에 그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이성적 통찰력의 습득이라면 교육자는 특정한 국가의 시민을 양성하는 일 이상의 중요한 임무를 지닙니다.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합당한 교육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교육자는 국가나 사회라는 경계에 국한되지 않은 채 진정으로 축복받은 삶, 즉 관조하는 삶을 영위하도록 젊은이를 준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 자체를 “일”과 “여가”로 구분하여 여가를 위해 일하고, 고상함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것과 유용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하여 교육의 본질적 과제란, 이러한 목표를 향해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그들이 교육을 필요로 하는 연령까지 이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가는 삶의 모든 것을 지탱하는 근본 축입니다. 일과 여가가 모두 필요하지만 일보다 관조하는 삶을 준비하기 위한 여가가 더 바람직한 것이라면 어떠한 활동을 통해 여가를 충족시켜야 할 것인지를 고찰해야만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야 비로소 가치 지향적 활동을 통해 자유로운 자기 도야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여가”와 단순히 피로를 풀기 위해 하던 일을 중단하는 것 사이의 구분이 이루어졌습니다. 청소년들은 유용하거나 필수 불가결한 것들을 배워야 하지만 그로 인해 자유로운 인간 정신을 상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육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적은 조용히 관조하는 시간을 즐기도록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인간이 해결해야 할 실제적 문제들을 유덕하게 처리한 뒤 정신적인 측면에서 신적인 것을 직관하도록 이끄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입니다.
플라톤이 소수의 통치자 계층에 부여했던 선의 이데아를 직관하는 지고의 기쁨과 행복이 이제는 인간 모두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영혼의 가장 고귀한 영역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교육은 완전한 자아실현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이해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는 이러한 교육목적은 사회적 덕성을 지닌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면서 보다 고귀한 가치를 지향하는 교육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게 됩니다.
2. 교육내용
선량한 시민을 만들기 위하여 국가-훈련이 할 수 있는 유일(唯一)의 완 전한 교육은 선량한 사람을 만드는 것과 정확히 같은 교육입니다. 실로 국가는 선량한 시민을 만드는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에게는 우리가 보았던 바 와 같이 건강과 같은 외적인 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국가는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습니다. 결혼의 조건을 규제함으로써 선한 사람은 건전한 체질을 갖고 태어나야 하고 체조교육을 시행함으로써 평생 동안 그 체질을 유지해야 합니다. ‘아동의 신체가 입법가의 목적에 적합하게 하기 위하여’ 플라톤은 결혼을 규제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러한 영역에서 플라톤의 입장을 옹호하였습니다. 이러한 규제는 그러나 동시에 국가가 시민의 체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육체와 정신이 둘인 것처럼 정신도 비이성적 정신과 이성적 정신으로 구분됩니다. 발생학적으로 볼 때 육체가 정신에 선행되는 것처럼 비이성적 정신이 이성적 정신에 선행합니다. 따라서 육체에 대한 훈련이 정신에 대한 교육보다 앞서고 습관에 의한 교육이 이성에 의한 교육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일관된 지론입니다. 이런 원칙 하에서 구성된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 순서는 먼저 신체의 단련에서 출발하여 좋은 습관 형성 단계를 거쳐 결국 지성의 도야에 이르게 됩니다. 즉 처음에는 신체적 발육에서 시작하여, 다음에 습관 형성의 단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성의 도야 단계로 차례차례 진행된다고 보았습니다.
출생과 국가에 의하여 시행되는 체조 교육의 훈련이 시작되는 나이 사이인 아동의 생애의 첫 7년은 가정에서 보내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교육이론에서 다섯 살까지는 아동을 가르치거나 아동에게 과제를 부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는 게임과 동화, 설화의 시기입니다. 이는 첫인상이 가장 신선하고 오래 남는다는 진리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이 시기에 국가의 관리인 “아동 검열관”은 불결한 것이 아이들의 영혼에 스며 들어서 근원에서 삶을 타락시키지 않도록 어린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5세에서 7세까지인 유아 초기의 마지막 2년은 몸소 잠시 동안 받게 되는 훈련, 특히 어쩌면 체조의 관찰자로서 보내게 됩니다. 이는 플라톤의 『국가』와 『법률』에서의 유아기 교육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을 7년을 주기로 하는 3단계 즉, 출생에서 7세까지, 7세에서 14세까지, 14세에서 21세까지 로 운영합니다.
7년을 가정에서의 삶에 전념하게 되는 것처럼 아동이 국가에 의하여 훈련되는 기간에는 각각 7년의 두 시기가 있습니다. 7세에서 사춘기까지는 신체가 훈련되는 시기이고 사춘기에서 21세까지는 마음이 도야되는 시기입니다. 21세에 청년은 훈련받은 몸과 마음의 기력으로 국가에 봉사합니다. 그렇다면 14년 동안 무엇을 배우게 되는 것일까요?
플라톤과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의 그리스에서의 일반적 교수(교육)의 보통 과목 즉, 음악, 체조(체육)와 문자(읽고 쓰기)를 교육과정으로 삼았습니다. 체조(체육)는 신체적 훈련의 전 체제를 뜻합니다. 체력을 훈련해서 단련하는 모든 종의 모든 것으로 되어 있으나 주로 달리기와 높이뛰기, 레슬링과 복싱 및 창이나 원반 던지기를 하였습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음악은 적절한 표현을 위해 필요했던 수단이었습니다. 성악이든 악기 연주이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음악의 개념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시가(詩歌)의 개념과 근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자는 읽기와 쓰기 및 시의 공부로 이해해야 합니다.
일반 학과(음악, 체조, 문자)에 이어 제4과목으로는 미술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이는 “그림 그리기”가 추가되었습니다. 체조, 음악, 문자 및 미술은 그러므로 7세에서 21세까지 15년의 비판적 기간의 훈련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로 쓸 수 있었던 교육과정에 해당합니다. 이들 네 가지 과목들 중에서 그는 체조를 7세에서 14세까지 가르치게 했을 것이고 14세에 문자를 먼저 가르치고 그다음 미술(그림 그리기)과 음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상기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 과정은 유아기에 절제와 강인성과 함께 시작하여 21세까지 계속됩니다. 즉, 일곱 살에 정규 교육이 시작되며 사춘기 시기에 초 중등 교육을 하게 됩니다. 반면, 고등교육이나 대학교육의 프로그램은 전혀 없으며 성인 교육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의 스승, 플라톤으로부터 기본적 철학 사상 중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교육은 ‘옳은 것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누구나 싫어해야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뜻한다는 견해, 행복과 선의 관계를 받아들인 것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들 양자가 초년에 아동을 위해 규정한 것에서의 유사성으로 미루어 판단할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 체제의 고등교육에 대한 주요한 노선을 추종했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입니다. 이제까지 고찰한 것을 종합해서 인간의 본성과 그에 따른 교육을 도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그에 따른 교육>
인간의 본성 |
교육의 단계 |
연령 |
교육과정 |
교육목적 |
||
비이성적 부분 |
욕망 |
신체의 교육 |
습관의 형성 |
1~7 |
동화, 설화, 체조의 관찰 |
시민의 교육(행복의 달성) |
의지 |
인격의 교육 |
7~14 14~21 |
체조, 음악, 문자, 미술 |
|||
이성적 부분 |
이성 |
지력의 교육 |
이성의 계발 |
|||
21~ |
수학, 논리학, 철학 등 |
입법가의 교육 |
※ 출처: (임태평, 2000: 269)
3. 교육방법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적인 학습방법으로 직접적인 관찰법을 강조하였고 특히 경험을 중시하였으며 실제적인 지식과 원리에의 도달에 있어 귀납법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집단적인 교육보다 개별적인 교육을 선호하였습니다. 마치 의료의 경우에 있어서도 개별적인 의료가 더 효과적이며, 권투 코치가 모든 제자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없듯이 교육에 있어서도 획일적인 집단교육보다 개인차 있는 개별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던 것입니다. 탁월한 의사는 보편적 지식 위에서 특수한 지식을 수행하는 자인 것같이 교육의 영역에서도 그러하며 따라서 교육의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이 내부로부터 교육의 방법을 생각해내야 하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어린이를 향한 교육방법을 이끌어내야 하는가라는 점이 현안(懸案)이라고 간파하였습니다. 그는 교사들이 옹호해야 하는 교육 이론적 요청 때문에 교육방법의 중요한 점들이 의도적으로 어린이들로부터만 나와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어린이들의 관심과 필요에 의해서 정해질 수만은 없다는 이러한 관점은 훈육의 개념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어린이의 본성이나 주위 환경에 상반되는 것이라도 필요하면 요구해야 한 다는 것입니다.
교육의 근본 원리는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가라는 방법적 원칙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교육적으로 배우는 것과 교육하는 것은 모두 아래 단계로부터, 즉 지각(知覺)과 욕구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의 첫 번째 단계(1-7세)에서는 감각운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때에는 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한 방법과 운동능력을 활성화시키는 교육 방법이 요구됩니다.
교육의 두 번째 단계(7-14세)에는 세 가지 방법이 제시되는데 모방, 정신적 성장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능력이 그것입니다. 먼저 모방은 동물에게 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방에는 동물적 모방 이외에도 예술적 세계를 포함합니다. 인식 그 자체도 우선은 사물의 내면적 형식을 영혼 안으로 각인시킴으로써 사물을 모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사는 그 사물의 실상에 대한 지식을 주는데 이때 그것은 이미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사 물 그 자체가 아닙니다. 배우는 사람 역시 처음에는 가르치는 사람의 지식을 모방합니다. 우리가 사물의 실상(實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미 그러한 실상을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귀 기울여 진정으로 순종함으로 써 이미 알고 사람의 실상에서 사물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배우는 사람이 자신의 고유한 통찰을 획득하기 위하여 사물을 스스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유한 통찰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이미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배우는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에서 그것의 현실화로 나아가야만 하는데, 그러한 일은 그가 무엇인가 질문할 것을 지녔을 때에 가능합니다.
스스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자기 도야를 위해 타율 교육이 극복되는 것입니다. 자기 도야는 질문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어려운 점은 이성을 현존하게 하는 로고스를 통해 자기 도야가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도야는 이미 인간이 진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의식 안에서의 의지와 추구함의 일치 그리고 주체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되는 것이 지식을 진정한 능력으로 만듭니다. 이 진정한 의미의 능력은 각각의 행동 및 가능한 모든 행위를 위한 내면적 정신을 지녔음을 나타냅니다.
모방은 지각하고 묘사하는 것이요, 정신적 성장은 정신적 각성이자 이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능력은 추구하고 창조하며 응용하는 능력입니다. 교육의 핵심은 교육의 진행과정에 있으며 이는 인간의 도야 과정에서 교육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육의 세 번째 단계(14-21세)에서는 교육의 진행과정에서 사고와 지식 그리고 행위의 통일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이때의 통일이란 로고스가 민첩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로고스에서 철학적 탐구와 행위함, 즉 인식적 도덕성과 윤리적 도덕성이 다 함께 정신적 인격형성의 최고 단계에 도달합니다. 철학적 앎과 삶의 통일을 위한 교육방법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종합하면, 감각적 지각과 가르침 그리고 직관은 로고스가 앞으로 나아가고 또 위로 상승하기 위한 방법적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고스는 감각적으로 포착된 사물의 세계와 윤리적이고 법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회, 문화 그리고 국가라는 지속적 세계로부터 자기 타당성의 세계인 이성을 단순히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성장하도록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이라는 순수한 공간에서만 가능한 잠재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식은 인식의 대상을 결코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식하는 사람 스스로가 질문과 인식의 대상이 될 경우에는 이 대 상이 변화합니다. 즉 이성적 능력을 사용하는 인간만이 변화하게 되는 바, 인간의 교육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 참고문헌: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과 교육론을 통해 본 행복교육 고찰(최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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