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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론

플라톤의 교육이론(동굴의 비유, 이데아, 인간관)

by 신박에듀 2020.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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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듀몬입니다. 플라톤은 「국가론」 제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무지의 상태에서 ‘좋은 것의 형식’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굴 안은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를, 동굴 밖은 지성의 빛에 의해 비친 ‘좋은 것의 형식’을 비유합니다. 플라톤은 동굴을 나가기 위해서는 그 수준에 맞는 교육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동굴의 비유를 이용하여 인간이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과 플라톤의 인성교육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동굴의 비유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들어서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먼저 동굴 가장 안에는 어릴 적부터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상태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앞만 보도록 되어있죠. 이들의 뒤에는 위로부터 멀리서 불빛이 타오르고 있고, 그 길을 따라 가면 인형극 공연을 할 때처럼 담 (흉장)이 쳐져있습니다. 담(흉장)을 따라 사람들이 돌이나 나무 같은 인물상, 동물상과 같은 인공물들을 쳐들고 갑니다. 이 사람들이 들고 가는 인공물들은 불빛에 비쳐서 동굴 앞에 결박되어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자로 비치게 됩니다. 만약 결박당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쇠고랑을 풀고 강제로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리고 불빛 방향으로 다가간다면 그는 눈부신 상태에서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우선 그는 자신이 봤던 그림자가 실재(實在)가 아니라 인공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누군가에 의해 그가 동굴의 가파른 입구로 끌어올려져 햇빛이 비치는 동굴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 그는 낯선 환경에 고통스럽지만 완벽히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햇빛 속에서 인공물로 봤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해는 바로 시공을 초월한 비물질적, 절대적인 영원의 실재인 '이데아'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물과 그림자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였으나 차차 햇빛에 눈이 익숙해져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점차 주위 하늘과 밤에 별과 달빛을 보게 되면서 더 쉽게 관찰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가 해를 관찰하게 되면서, 계절과 세월을 가져다주며 보이는 영역에 있는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것이 태양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플라톤이 제시한 동굴의 비유는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동굴을 오르는 것과 동굴 밖에 있는 사물들을 인지하는 것을 우리가 가지 계로 향한 마음의 등정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이 등정을 마치게 되는 최종 도착지 점이 바로 ‘좋은 것의 형식’입니다. 동굴의 비유 속에서 교육은 인간이 동굴 속에서 고개를 돌리게끔 하고, 인간을 동굴 밖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좋은 것의 형식’으로 방향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육의 역할입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출처: http://cafe.daum.net/ymcdeaf/HPsd/253?q=%ED%94%8C%EB%9D%BC%ED%86%A4+%EB%8F%99%EA%B5%B4%EC%9D%98+%EB%B9%84%EC%9C%A0&re=1

 

 

2. 플라톤의 인간관

 

  플라톤을 이해함에 있어 그의 인간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이상 국가의 실현을 목표했던 그는, 한 사회를 이루는 인간의 올바름에도 관 심을 두었습니다. 올바른 인간의 모습을 가지기 위해 그가 제시한 교육의 과정들과 강조점을 살펴보면, 인간이 지닐 정신, 지혜, 실천적인 부분을 그가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의 올바름과 함께 인간의 올바름에 대해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 언급되고 있는 올바른 인간의 모습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그가 지향하는 사람됨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플라톤을 앎의 측면만을 중시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개인의 인간다움에 대해 그가 추구하는 훌륭함, 즉 덕목들을 살펴보면 앎만 강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덕목들을 분류해보면 먼저 첫 번째로 ‘절제, 올바름, 용기, 자제, 자족, 조화’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덕목들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무절제, 오만무례함, 탐욕’과 대비되는 것들로 이 덕목들을 갖추면 영혼(정신)이 훌륭해지고, 갖추지 못하면 영혼이 훌륭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교양, 배움을 좋아함, 앎(인식, 지식, 전문적 지식), 아름다움, 올바름, 원리, 조화, 좋음, 좋은 것, 지성, 진리, 참으로 존재하는 것, 최대 선, 포괄적인 봄, 헤아리는(이성적인) 부분, 훌륭하게 잘 해냄, 훌륭함’이 있습니다. 이는 ‘교양 부족, 무교양(교양 없음), 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태, 사려분별(슬기, 지혜), 아름다운 것에 대한 무지(무경험), 의견, 비진리, 최대 악’과 대비되는 것들로 이 덕목들을 갖추면 이성(지혜)이 훌륭해지고 갖추지 못하면 이성이 훌륭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정직, 경건, 절제, 교양, 좋음, 명예, 올바름, 용기, 자제, 조화, 훌륭하게 잘 해냄’이 있습니다. 이는 ‘거짓, 불경건, 무절제, 교양 부족, 나쁨, 못됨(나쁜 상태, 타락), 무절제, 무정부 상태, 오만 무례함’과 대비되는 것들로 이 덕목들을 갖추면 기개가 훌륭해지고, 갖추지 못하면 훌륭해지지 못한다고 합니다. 특히 기개는 실천적인 것과 연결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앞선 덕목들은 혼, 이성, 실천이라는 각각의 분야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서로 연관성을 지닙니다. 올바름, 절제, 용기, 자제, 교양 등의 덕목들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다움에 이르기 위한 덕목들에는 지혜만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참다운 인간다움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혜만이 아닌, 절제, 용기, 자 족, 조화, 정직, 경건, 교양 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의 계급을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로 구별합니다. 그리고 이 구별을 개인에게도 적용시켜 개인 또한 욕망, 기개, 이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국가의 통치자 계급에 해당하는 개인은 이성적인 인간이어야 하고, 수호자의 영역에 해당하는 개인은 기개적 실천이 훌륭한 인간이어야 하며 생산자의 영역에 해당하는 개인은 정신적 욕망의 절제를 잘 조절하는 인간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훌륭함을 달성하기 위해 플라톤은 그가 목표로 삼는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만의 교육(paideia) 체계를 구성합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의 계급을 3가지로 분류하였고, 한 개인을 구성하는 내면도 3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의 3계급을 생산자, 수호자, 통치자로, 개인을 구성하는 내면을 욕망, 기개, 이성으로 보았습니다. 플라톤의 교육은 한 개인을 훌륭하게 이끌어감과 동시에 훌륭함을 갖추게 된 개인이 훌륭한 국가를 이루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생산자의 훌륭한 모습은 자제, 자족, 조화, 용기, 올바름과 함께 ‘절제의 덕’을 이루는 것입니다. 훌륭한 생산자의 모습은 절제를 이루는 것이지만, 훌륭하지 못한 생산자의 모습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무절제함과 오만 무례함, 탐욕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플라톤이 바라보는 생산자의 이상적인 모습은 절제를 지니는 것입니다.

  수호자의 훌륭한 모습은 정직, 경건, 절제, 교양, 좋음, 명예, 올바름, 자제, 조화, 훌륭하게 잘 해냄과 함께 ‘용기의 덕’을 이루는 것입니다. 훌륭하지 못한 수호자의 모습은 거짓, 비경건, 무절제, 교양 부족, 나쁨, 못됨(나쁜 상태, 타락), 무절제, 무정부 상태, 오만 무례한 모습입니다. 수호자가 지녀야 할 이상적인 모습은 용기를 지니는 것입니다. 통치자의 훌륭한 모습은 교양, 배움을 좋아함, 앎(인식, 지식, 전문적 지식), 아름다움, 올바름, 원리, 조화, 좋음, 지성, 진리, 최대선, 포괄적인 봄, 헤아리는(이성적인) 부분, 훌륭하게 잘 해냄, 훌륭함과 함께 ‘지혜의 덕’을 이루는 것입니다. 훌륭하지 못한 통치자는 교양 부족, 무교양(교양 없음), 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태, 사려분별하지 못함, 아름다운 것에 대한 무지(무경험), 의견, 비진리, 최대악을 지닌 모습입니다. 통치자가 지녀야 할 이상적인 모습은 지혜를 지니는 것입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의 3계급이 지녀야 할 덕이 절제, 용기, 지혜인 것처럼, 개인을 구성하는 내면의 3 부분이 지녀야 할 덕 또한 절제, 용기, 지혜입니다. 개인 내면에 있는 욕망, 기개, 이성이 지향할 덕은 그가 바라보는 국가를 구성하는 3가지의 계급인 생산자, 수호자, 통치자가 지녀야 할 덕과 일치합니다. 국가는 이들 3계급이 절제, 용기, 지혜의 덕을 조화롭게 이룰 때 올바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들 세 계급은 상호보완적으로 협동해야 국가의 올바름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재를 혼(psyche)으로 이해하고 바라보았던 플라톤은 국가의 올바름을 이루어 갈, 인간 개개인의 내부 영역에도 3계급에 속하는 절제, 용기, 지혜의 덕을 동 일하게 적용합니다. 개인 역시 내부에서 이들 덕을 조화롭게 이룰 때 올바름 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플라톤의 인성교육의 목표와 교육방법

 

  국가의 모든 덕들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이상적 국가가 되듯이, 개인의 영혼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부분들이 조화로워질 때 영혼의 올바름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개인 안에 있는 부분들이 조화로워지면, 그 사람들은 올바른 사람, 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될 것이라 고 봅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아는 것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 아는 것과 같습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인간 본성은 영혼입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플라톤의 아이디어를 가장 간단히,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하면 영혼의 ‘양육(養育)’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이 이데아를 볼 수 있게 최고의 상태를 만드는 데 있으며 이는 곧 인간 본성에 대한 교육으로 이어집니다. 플라톤은 인성교육 방법으로 어린 시절부터 체육 교육과 시가 교육을 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영혼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강한 영혼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몸이나 식물이 건강하고 강하면 외부의 영향을 덜 받게 됩니다. 혼도 가장 용감한 경우에 외부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집니다.

  체육 교육은 기개를 길러주고, 영혼을 강인하게 해서, 개인 내부의 용기를 발현시킨다고 합니다. 즉 체육교육은 혼이 외부의 자극들에 의해 흔들리거나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강한 영혼을 만들어 냅니다. 혼의 기개가 과용(過用)되어, 인성이 성마르거나 거칠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가 교육이 필요합니다. 혼의 기개(격정)만을 키우게 되면, 혼이 결의와 기개로 충만해져 자기 이상으로 용감해질 수 있습니다. 힘과 사나움 때문에 논의를 싫어하고 시가를 모르게 되며, 말을 사용한 설득은 전혀 이용하려 들지를 않고 모든 것을 짐승처럼 행할 수 있습니다.

  시가 교육은 과도한 체육으로 인해 혼이 사나워지거나 거칠어지지 않기 위해 필요합니다. 체육교육과 시가 교육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데, 이 관계는 온화함과 부드러움을 지니되 느슨해지거나 비겁하지 않기 위해서, 용맹함을 지니되 경직되지 않고, 거칠어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좋은 어법과 말은 우아함과 고상함을 낳습니다. 나쁜 어법의 방식과 말을 사용한 시가 교육은 꼴사나움을 낳습니다. 잘 조화된 건강한 영혼은 좋은 시가의 리듬을 따릅니다. 이것은 ‘좋은 말씨와 조화로움, 우아함과 좋은 리듬은 ‘좋은 성격’을 따릅니다. 플라톤은 이를 성격(성품: ethos)을 진정으로 잘 그 리고 훌륭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갖게 된 ‘사고(dianoia)’라고 말합니다.

  시가와 체육으로 인한 교육은 우아함과 고상함과 단단한 성품을 낳게 되며 이러한 성품은 사고의 형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혼(마음) 안에 들어있는 성격에 따라 그 삶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 성격은 시가와 체육을 통해 갖게 된 사고(dianoia)입니다. dianoia의 성격은 수학적 사고, 추론적 사고, 가설이 포함된 지식을 말합니다. 눈으로 영상과 사물을 확인하는 단계에서 머리로 그려보며 생각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완전한 지식이 아닌 가설과 추론이 포함된 사고를 말합니다.

  플라톤은 dianoia가 시가 교육을 통해 접했던 아름다움을 계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것인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혼이 아름 다운 사람은 조화된,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입니다. 플라톤적 관점에서의 인성이란 그 사람의 혼(psyche)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혼의 교육, 영혼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영혼의 교육이란 영혼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지닌 영혼이 지혜를 사랑하도록 이끌어 참다운 앎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숨 쉬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프쉬코(psycho)에서 유래했습니다. ‘숨’은 우리의 생명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며, 호흡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는 가장 직접적인 인간의 활동입니다. 영혼(psyche)이라는 말속에 담긴 생명의 의미는 인간의 삶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삶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호흡을 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혼을 지닌 것이며, 영혼은 인간의 존재를 대신하는 개념입니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혼의 특성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혼은 언제나 삶(생명: zoe)을 대동하고 오기 때문에(Plato, Phaidon, 105d) 인간 역시 몸 안에 혼이 있어야 ‘살아 있다’고 합니다. 혼(psyche)은 그 일차적의 미로서의 ‘생명’, ‘삶’, ‘목숨’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육체가 살아있는 이유는 혼이 내재하기 때문입니다. 혼은 삶을 대동하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불사하는 것(athanaton)이라 일컫는데, 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불사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에게 죽음이 오게 되면 그 사람의 육체는 사멸하나, 불멸하는 혼은 온전한 상태로 그 사람을 떠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죽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의 삶에서 영혼을 보살피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며, 꼭 필요한 것입니다.

 

“혼이 나쁜 것들에서 벗어나는 길이나 구원책으로는, 혼이 가능한 한 최대한 으로 훌륭해지고 지혜롭게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으니... 혼이 저 승(하데스)으로 가면서 지니고 가는 것으로는 교육(교양: paideia)과 생활방식 (trophe)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인데.”(Plato, Phaidon, 107d).

 

  이처럼 플라톤은 혼이 죽지 않는 불멸(不滅)의 성질을 갖고 있으며, 영원 히 죽지 않는 혼이 나쁜 것들에서 벗어나 훌륭해지고 지혜롭게 되기 위해 선 정제된 교육과 생활방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영혼으로 보는 플라톤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을 훌륭하게, 지혜롭게 만드는 교육은 삶의 필수요소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은 『메논』에서 잘 드러납니다. 『메논』에서 플라톤은 보다 더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영혼불멸설을 언급합니다. 영혼불멸설은 ‘배움이 곧 상기’라는 메논의 설명을 정당화시켜줍니다. 영혼이 육체적 상태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사실상 ‘알고 있는 것이거나 알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 배우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고 하면서, 메논의 역설에 서 지적된 모순을 해결합니다.

  메논에 의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발견하려고 하는 대상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면 어떻게 탐구가 가능할 수 있으며, 설사 그것과 마주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그것이 찾고 있었던 것 인지를 알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이러한 역설적 의문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영혼 불멸을 포함하는 가르침을 제안합니다. 그에 따르면, 영혼은 이미 육체에 들어가기 전에 존재하며, 영혼이 여러 가지 지식들을 습득하여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은 불사하기 때문에 교육은 영혼이 이전에 배운 것들을 상기시키는 일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배움이라 말하는 것은 영혼이 습득한 지식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즉 불멸하는 특성을 지닌 영혼은 죽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지 식들을 이미 습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육체에 정착한 혼은 삶을 통한 배움 (대화, 토론, 숙고)에서 이미 알고 있던 지식들을 상기하게 됩니다. 따라서 혼은 불멸하는 특성과 함께 인식의 기능까지 갖고 있습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인간 존재는 인간의 영혼이며, 인성은 영혼의 훌륭함입니다. 따라서 플라톤적 관점의 인성교육이란 영혼의 훌륭함을 위한 교육이 됩니다. 그는 영혼을 삶의 기능(ergon)을 수행하게 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세상의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훌륭함이 있는데, 혼에도 훌륭한 상태가 있음을 언급합니다. 사는 것은 혼의 기능이 작용되는 것이기에, 훌륭한 혼의 상태는 삶의 기능을 잘 수행해 낼 수 있지만, 나쁜 혼의 상태는 삶의 기능을 잘 수행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기능’인 사는 것을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선, 그 원인이 되는 혼의 기능이 훌륭해야 합니다. 혼이 훌륭해진 개인이 많아지면, 국가의 상태와 기능도 훌륭해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측면의 플라톤적 인성 교육은 개개인이 가진 혼의 훌륭함 달성에 그 목적이 있으며, ‘국가’적인 측면의 플라톤적 인성 교육은 이상 국가 실현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 참고문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교육론 비교 연구(최연선, 2014)

영혼, 지혜, 실천의 노에시스를 향한 플라톤의 인성교육(김회용,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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