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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슈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전인교육 원리, 방법)

by 신박에듀 202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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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듀몬입니다.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논함에 있어 루소와 함께 중요한 교육학자가 또 있지요. 바로 페스탈로치입니다. 페스탈로치는 평생을 교육과 민중에 바쳤습니다. 그의 생애는 빈민을 구제하고, 대중교육을 통한 새 조국을 간절히 열망했고, 인간 각자의 자아실현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고귀한 교육 생애였습니다.

 

 

1. 전인교육 원리

 

  페스탈로치의 교육목적은 삼육론(3H's)에 있습니다. 삼육론이란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의 핵심으로 머리, 가슴, 몸을 고루 도야해 하나의 인격으로 키워내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지육․덕육․체육의 조화로운 교육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는 이 세 가지 능력이 이미 내적으로 잠재해 있고, 이것들은 순차적으로 발전해 간다고 했습니다. 그는 교육이 이 순차적 발달을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생활 속 직관을 통해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균형과 자연의 교육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인간의 정신이 하나의 사항을 향해 너무나 기울어지고, 또 너무나 강제적으로 인도되면 인간은 자기의 힘의 균형을 잃는다. 그러므로 자연의 교육법은 강제적이 아니다.

 

페스탈로치는 이 전인교육이 다음과 같은 원리에 의해 발전되어 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첫째, 자발성의 원리입니다. 전인교육의 성패는 자발적인 발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교육은 외부적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순수한 마음으로 아동 스스로가 내면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외적 자연보다 내적 자연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모든 ‘교육적 교수’는 아이들이 스스로 내면에서부터 이끌어 내는 활동이며 그 밖의 것은 모두 ‘비교육적 교수’라고 했습니다. 이는 어린이 각자가 가진 개인 능력과 환경을 존중해서 교육하는 ‘개성 존중’과 ‘개인차에 의한 교육방법’의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어린이를 어른의 축소판으로 생각하지 말고, 어린이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어린이는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가 있으며 미래보다는 현재의 생활과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습자를 무기력한 존재로 여겨 왔던 생각들은 루소에 의해 극복되기 시작했고, 페스탈로치에 이르러 정착되었습니다. 이 자발성의 원리는 자기 활동, 자기 구성, 자기 발전 또는 자기 생산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의 중심이 자아, 곧 생명이라고 보는 원리입니다.

  인간에게는 본성 가장 깊은 곳에 모든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동의 내면 역시 무한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교육은 아동이 이 잠재력을 균형 잡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린이들의 균형 잡힌 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교육이 무엇인가 하는 주제에 대한 단 하나의 올바른 생각은, 교육이 인간 본성 안에 깃든 모든 능력을 고르게 계발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유도됩니다 ······그러므로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어떤 것을 주입하는 것이기보다는, 아직 계발은 안 되었지만 적어도 계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어린이는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김정환 역, 2006:117-118).

 

  둘째, 직관의 원리입니다. 페스탈로치는 모든 인식의 절대적 기초가 직관이며 교육의 본질을 직관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페스탈로치가 기초교육에서 가장 중요 한 요소로 꼽은 것이 직관이고, 그 직관을 파악하고 성립시키는 능동적 활동의 주체를 인간 자신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이 어떤 개념을 이해하고자 할 때, 우선 사물의 감각적 인상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이것을 ‘외적 직관’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 외적 직관을 자신의 내면적 인식 활동으로 재구성해서 결국 스스로 내면화시켜나가는데 이것을 ‘내적 직관’이라고 했습니다. 즉 대상에 대한 감성적 지각은 경험적 인식에 의해 본질적 직관으로 발전하며, 이런 순환구조가 연결해 가면서 인간의 참다운 인식과 사유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직관의 인상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고력의 도야는 모든 물건이 우리에게 주는 직관의 인상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우리의 외적인 여러 감각에 부딪힘으로 우리 정신력 속에 원래 간직되어 있으면서 스스로 싹트려 하는 충동을 통해 생기를 얻는다. 그것을 성질상 무엇보다도 먼저 직관의 대상이 우리에게 준 인상을 자각하게 하고 또 그 대상을 감성적으로 인식하게 한다(김정환 역,1968:69).

 

  셋째, 조화의 원리입니다. 직관을 통해 주어진 것은, 우선 수·형태·개념에 따라 규정되어야 하고, 수업은 가슴(도덕적 도야), 머리(지식 도야), 손(수공 및 실천력)이 서로 최대의 조화를 이루도록 진행되어야 합니다. 페스탈로치는 각 인간에 잠재된 신체적, 지적, 도덕적 능력을 조화롭게 발달시켜야 한다고 했으며, 교육이란 선천적인 잠재능력을 고루 발전시켜 원만한 인격을 형성하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조화로움이란 능력뿐 아니라 사랑과 신앙 등 모든 면에 있어서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느 힘만을 일방적으로 편중함은 그 본성 안에서 절름거리며 죽어가고 있는 능력의 요구를 과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과 신앙에 있어서도 또 사고력, 기술력, 그리고 직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가정적 시민적 행복의 내면적 기초가 되는 것은 바탕에 있어서는 정신과 생명이다 ······그것은 여러 면으로 가정적 시민적 불화의 근원이 된다(김정환 역, 1968:61).

 

  페스탈로치는 인간의 타고난 무한한 잠재력을 어린이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러한 잠재력은 생활 속 경험 즉 본질적 직관에 의해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 이러한 직관을 통해 주어진 것은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이루어야 원만한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 전인교육 방법

 

 가. 기초능력 도야

 

  페스탈로치는 도야에 있어, 인간의 여러 능력을 고루 계발하는 일반도야(Allgemeinbildung)와 인간이 되려면 꼭 갖추어야 할 기본적 능력의 기초를 닦는 기초 도야(Elementarbildung)를 중시했습니다. 일반 도야와 기초 도야가 아닌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아닌 것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민중의 자녀들을 인간으로 일깨워주는 것은 기초교육의 원리라 여겨, 민중교육에 있어 기초교육을 중시했습니다.

  페스탈로치가 기초 도야의 근본으로 여긴 것은 첫째로 ‘자연교육의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 일사불란한 아름다운 법칙이 있듯 인간 성장에도, 교수와 학습에도 이것이 있기에 우리가 꼭 그것을 따라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교육방법 원리로 ‘합자연 원리’입니다. 교육은 하늘이 주신 자연의 질서에 따라야 하며, 교수․학습에서 특히 존중되어야 할 것은 순차성․상관성․전인성․ 법칙성․개별성입니다. 그는 합자연의 원리에 대하여 만물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예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이여! 이 고상한 자연의 행위를 모방하십시오. 자연은 가장 큰 나무의 씨앗에서 먼저 눈에 띄지 않는 싹을 틔우고, 그다음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날마다 시간마다 새로운 것을 덧붙여 먼저 줄기를, 그다음엔 큰 가지를, 마지막으로 잔가지와 잎이 달리는 실가지까지 차례로 길러 냅니다. 나무의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보살피고, 모든 새로운 부분을 이미 안전하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에 연결시키는 자연의 행위, 이러한 고귀한 자연의 행위를 주목해 보십시오(김정환 역,2008:135).

 

  그는 올바른 시작이 교육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정교육을 가장 중요한 ‘기초능력 도야의 장’이라 생각했고, 주로 초등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유년 시절에 잘 지도받는 것이 중요하며, 이렇게 자연스럽게 교육을 받는 것이 이후의 생활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즉 초보적인 단계의 교육은 인간의 내면적 힘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가정교육이나 초등 교육에서는 완벽성을 추구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초보적 단계의 완성은 어린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힘을 의식하는 것, 특히 보편적인 미적 감각이나 질서 감각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고수했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린이들이 배운 것은 그것이 작은 일이라도 완성시키며 절대로 퇴보시키지 않는다.

2. 배운 단어는 하나라도 잊지 않게 한다.

3. 글자 하나라도 서툴게 쓰는 일이 없도록 한다. 나는 진보가 느린 어린이 에게는 진전이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그 전보다 뒤떨어지는 어린이에게는 엄격했다(김선미,2005).

 

  이러한 기본 원리에 따라 기초 도야에 있어 ‘수(數)․형(形)․어(語) 교수론의 원리’를 확립했습니다. 현대적 용어로 산수․기하․국어의 세 교과에 대한 교육 방법론을 「게르트루트는 어떻게 그의 자녀를 가르치나」 6, 7, 8 신에서 구체적으로 도표화해서 세밀하게 논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數)와 형(形), 언어(語)를 통한 머리의 교육 방법은 지능력, 논리력, 사고력을 향상할 뿐 아니라 정확한 판단력과 창조력, 그리고 인내력을 향상해 올바른 인간을 형성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이 세 가지 힘에서부터 생긴다고 파악했던 것입니다.

 

1. 음(音)을 발(發)하는 힘에서 언어의 근원이 발생한다.

2. 심상(心象)을 만드는 것, 아직 명확하지 못한 단순한 감각력, 그리고 이 힘에서 모든 형의 의식이 생긴다.

3. 명확하고 별로 단순한 감각적이 아닌 것에서 통일의 의식이 생기고 또한 그와 같이 계수(計數)와 산수(算數)의 힘이 생겨야 한다(김선미,2005).

 

  이 세 교과의 주요 교수 원리는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주요 개념을 철저하게 익히며, 개념들 사이의 연관성 학습을 철저히 하고 심리학적인 순차성과 계열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직관력을 키우는 데 궁극적인 목표를 두는 것에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직관력’인데, ‘직관력 도야’는 직관적으로 사물의 본질에 접근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을 키워 주는 교육을 말합니다. 페스탈로치가 말하는 직관이란 단순히 개념적인 것이 아니고 감정을 중시하는 것이어서 논리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직관을 외적 직관과 내적 직관으로 구분합니다. 어떤 개념을 이해하고자 할 때 먼저 사물에서 받는 감각적 인상을 외적 직관이라 하며, 이 외적 직관의 감각적 인상을 자신의 내면적 인식활동으로 재구성 및 인식해서 자기의 인격으로 형성해 나가는 것을 내적 직관이라고 합니다.

  페스탈로치에게 있어 직관은 감각적 경험을 통해 외부 세계와 사물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사물을 감각적 경험을 통해 인식하되, 인간의 주관적인 능력에 맞게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그는 어린이가 스스로 자기 주변의 사물들과 접촉하고 직관을 통해 흡수한 것들을 곧바로 마음속 개념으로 형성하는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동기의 인식능력은 감각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동기까지는 지식이나 언어 중심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교육을 배제해야 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감각을 통해 사물을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이런 직관의 원리가 지적인 교육 방법에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와 도덕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모든 교육 방법론의 결론 부분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도덕․종교교육의 원리’입니다. 페스탈로치는 이 부분을 전 교육체계의 초석(礎石)이라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이 도덕교육이 어린이에게는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린이의 첫 학습은 머리도 이성도 아닌 감각․가슴․사랑의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서 어머니와의 교감, 어머니의 안방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신(神)의 개념 역시 어머니와 자녀 사이에서 자라나는 사랑․신뢰․감사․순종․믿음․의무감 등에서 싹튼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교육으로 싹튼 신과의 관계는 자기 자신을 초월해 인류의 역사 완성이라는 성스러운 과제에 참여하는 삶의 자세로 나타납니다.

  페스탈로치가 중요하게 생각한 기초능력은 삶을 통해 습득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가정에서 생활교육을 바탕으로 정립되는 교육이야말로 페스탈로치가 소망한 민중교육의 초석인 것입니다.

 

 나. 도덕성 도야

 

  페스탈로치는 삼육론을 통해 머리, 손, 가슴을 고르게 발달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 부분을 동일하게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가슴, 머리, 손의 조화가 각각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는 ‘균형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머리, 가슴, 손 중 하나에만 치우치지 말아야 하나, 가장 중심이 되는 교육은 가슴이 되어야 하고 머리와 손의 교육은 이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슴의 교육’은 도덕성 교육입니다. 가슴의 도야는 도덕성을 뿌리로 이뤄지고, 사람됨을 보장하는 보증입니다. 그는 모든 능력이 고루 자극되어 각각의 몫을 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가장 기준이 되는 것이 인간의 정신적 본성이며, 교육이란 인간 본성에 깃든 모든 능력을 균형 잡히게 계발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때 정신적 본성 계발은 어린이와 가장 먼저 교류하게 되는 어머니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가정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자연에 따르는 교육을 받아야 도덕적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시민적 도덕성의 기본이 되는 믿음, 감사, 신뢰, 사랑의 감정 등이 바르게 교육되어야 도덕적으로 도야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도덕교육은 이성적 접근과 정서적 접근방식이 있는데, 어린이에게는 정서적 접근이 앞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어린이의 첫 학습은 머리나 이성으로서가 아닌 감각․가슴의 사항이기 때문에 도덕적 도야는 어머니의 정서적 사랑을 체험해야 싹트고 계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도덕성을 일깨우고 인간들 사이에서 실천하도록 하면서 인류 전체를 구원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페스탈로치는 도덕적 기능을 실제로 도야시키려면 도덕적인 생활태도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덕적인 생활태도는 도덕적 기능을 도야하지 않는 이론과 설교를 듣는 것보다 좋다는 것입니다. 페스탈로치는 은자의 황혼에서, 자신이 “거칠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엄격히 다루고 체벌도 주었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평소 아이들을 향한 교사의 마음과 사랑에 진실성이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며, 그런 진실한 사랑을 바탕으로 작은 규칙들을 엄수시키는 것이 아이들의 도덕적 기능을 도야시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정의는 무엇이며 부정은 무엇이냐 하는 관념을 어린이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행한 방법은 단순하였습니다. 그것은 매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관시키며 경험시키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조용하지 못할 때 “그래서 공부가 되겠는가?”라고 조용히 그들 자신의 감정에 호소하면 되었습니다. 그들의 정의감과 공정감은 참으로 확고하며 또 자연스럽게 발로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참된 호의로써 사람됨을 높여주고 굳세게 합니다 ······. 도덕의 기초 도야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착안점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첫째, 참된 감정으로 도덕적인 정서를 환기시킬 것.

둘째, 올바르고 착한 일에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도록 도덕적인 훈련을 시킬 것.

셋째, 어린이들의 생활과 환경 속에 얽혀 있는 정의 관계·도덕 관계를 사색, 비교시킴으로써 도덕적인 견해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김정환 역,2003: 119).

 

  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사회성의 긴밀한 연결성에 대하여 강조했습니다. 한 개인으로서의 인격 완성이 도덕성 향상의 중요한 목표이며, 도덕성의 향상은 자아완성과 동포 완성의 두 측면을 지녀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도덕적 도야는 이웃과의 완성으로 이어져야 하고, 이웃과의 완성으로 도덕의 사회적 도야가 이뤄져야 완전한 도덕적 도야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구원과 사회의 구원이 서로 함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육 원리란 현실 생활과 맺어진 직관적인 경험으로 의식될 때야 비로소 참된 것이며, 경험적 배경이 없는 진리는 어린이들에게는 그저 싫증 날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 안에 진리 감과 정의감이 깊이 개발되면 그것은 인간 인식의 기본 원리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하여 편견이 어떠한 중대하고 해로운 결과를 가져와도 그것에 순수하게 대항할 힘을 그 내부에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나쁜 교육의 씨가 뿌려져도 그대로 자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편견, 어떤 무지, 어떤 미신도 그를 유혹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아무리 정의를 영원이라 말하고, 스스로는 사랑도 정 의도 없이 지껄인다 해도(김정환 역,2003:127).

 

  인간은 내면적인 힘, 즉 진리에의 감각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며, 교육은 이런 도덕적 인간이 되게 하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도덕적 능력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사회적 발전이 어느 단계에 놓여 있는가를 평가하기 때문에 국가는 그러한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목적을 인간 개혁과 사회 개혁에 두고 있습니다. 교육을 인간 도야의 수단인 동시에 인간 개혁의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 개혁을 통해 사회를 개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도덕적으로의 인간 개혁으로 결국엔 사회를 개혁시키고, 나아가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다. 기술력 도야

 

  페스탈로치에 있어 완전한 교육이란 기초교육과 사회교육, 그리고 직업훈련의 통합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노동과 직업을 신성하게 여기고 그것을 교육의 장에 도입시켜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게르트루트는 어떻게 그의 자녀를 가르치는가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과 교육을 통합시켜 기초교육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직업교육은 전인교육의 관점에서 신체도야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업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기량은, 단순한 움직임으로부터 복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칙성을 지니며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교육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또 페스탈로치의 노작교육은 ‘가정에서의 노동’을 강조합니다. 가사활동은 어린이들의 주의력을 집중시키고 그 판단력을 날카롭게 합니다. 또한 반복되는 활동을 통해 그 심정이 높은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가사노동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 알 수 있습니다.

 

현세대는 가정적인 노동을 비웃으며, 그 기초 위에 선량한 시민 교육을 건설한다는 생각을 비웃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인간의 사명이, 시민의 권리가, 조국애가 어떠어떠한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그대들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며 일하고, 가족을 본받아 하느님을 찾도록 하고 겸손하게 거닐도록 가르쳐라. 그대는 그럼으로써 다른 어린이들이 입으로만 외우는 일을 그대의 어린이는 실행하는 시민이 되게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리를 따름으로써 현자를 만들게 된다. 또 자녀들을 훌륭하게 기르는 가장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요설로 어린이들을 이끌어 그들의 오감(五感) 중에서 귀만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김정환 역, 2003:60-61).

 

  때문에 그는 기초교육에 있어 노작교육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노작교육의 방법 원리는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 한다’입니다. 노동이란 각자가 처한 환경에 알맞은 생활교육의 일환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를 얻으며 감사함을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육체적인 욕구는 그의 여러 능력을 개발시키는 기반이 된다. 그것은 모든 참된 인간의 지혜와 덕성의 이중적 기초를 단순하고 바르게 제공한다. 그것은 감사와 사랑을 낳게 한다 ······그리고 빵을 얻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노동이 되고, 그것은 인간의 도덕과 덕성을 지상에 확립시키는 것이 된다(김정환 역,2003:50).

 

  페스탈로치는 직업교육의 목적을, 개인이 보다 효과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미리 익히는데 두었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전인교육의 방향은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알맞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가운데서 생활이 나아지며 더 나 아가 도덕적으로 성실함을 갖춘 근로인을 육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초기에 그가 직업교육을 강조한 것은 당시 빈곤상태에 놓여 있던 빈민 자녀들을 교육을 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는 빈곤을 타개하려면 기술력 도야가 필수적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의 빈민층들은 좌절감이 깊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기능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생활 도야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순한 기술 도야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 심성 도야인 도덕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내적 도야가 조화된 기술력 도야만이 궁극적으로 민중의 삶을 도야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직업교육에 있어 전인적 직업교육을 주장했습니다.

 

많이 일하고 많이 경험하라. 또 그럼으로써 일반적인 법칙과 원리에 비추 어 가장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라. 그러면 그대의 행로는 굳건할 것이다. 그대의 인생의 노정은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그대에게 필요한 것을 지니게 될 것이며 그것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첫 욕구로 도야하고 그것을 순수한 가정의 지력(智力)에까지 높여 주는 유익하며 유용한 진 리의 인식은, 유년 시절에 노동을 통하여 개발되는 것이다(김정환 역,2003: 59-60).

 

  직업교육과 인간교육 중 어느 것이 앞서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를 오랫동안 괴롭힌 문제였습니다. 그의 교육활동 후반기에서는 인간 도야가 절대 우선해야 한다고 믿었으나,「게르트루트는 어떻게 그의 자녀를 가르치는가」를 쓸 무렵에는 빈민에게는 직업 도야가 인문교육이나 언어교육에 우선해야 한다고 논하기도 했습니다. 페스탈로치 노동교육사상의 기본적인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생산노동을 교육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적으로 빈민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생산노동을 현실적으로 시도했습니다. 지도층과 민중이 같이 협력해서, 위로부터의 도덕적 교화와 아래로부터의 근면한 노동을 통해 사회 전체의 복지를 추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둘째, 노동교육을 빈민 생활상의 필요와 결부시켜 경제적 측면과 인격 형성 측면을 하나의 교육으로 파악했습니다. 노동교육은 노동의 효율성을 높여 경제적인 이익을 얻음과 동시에 노동의 과정을 통해 주의력, 판단력, 인내․근면성 등의 능력을 통합적으로 기르게 합니다. 페스탈로치는 민중을 빈곤과 사회혼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노동 그 자체를 인간 형성의 보편적 원리로 삼은 것입니다.

  셋째, 생산노동과 교육을 결합한 ‘종합기술 교육사상’이 생겨났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아동들을 단순 노동 분야에 국한시키지 않고, 노작활동을 통해 다면적 능력을 발달시키고 종합 기술적으로 각종 노동을 교육하려 했습니다. 페스탈로치의 노작교육은 경제적 필요에서 출발해 노동을 인간 형성의 보편적 원리로 삼았습니다. 아동들이 실생활에서 노작으로 확실하게 형성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다른 상황에서 적응력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일, 곧 ‘경험’이 ‘학습’에서 갖는 의의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닙니다.

  페스탈로치의 ‘기술교육’은 일반적인 ‘직업교육’과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페스탈로치가 언급하는 기술교육은 종합적 교육을 의미합니다. 즉 ‘단순한 기술력 도야’가 아니라 ‘기술력 도야’ 과정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함께 발전되어야 하고, 자연과 사회적 삶의 양식을 배제하지 않는 조화로운 도야를 말합니다. 그의 기술력 도야는 노동의 목적, 과정, 결과 등에서 교육성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 참고문헌: 페스탈로치의 생애와 교육사상(박미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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